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밀 문학 (문단 편집) === 박티 문학 === 6세기경 칼라브라 왕조가 쇠퇴하고, 남인도 동북부에서는 [[팔라바 왕조]](275–897)가 세력을 확장하였으며 남부에서는 중기 [[판디아 왕조]](6–10세기)가 흥기하였다. 중기 판디아의 초기 군주는 자이나교도였으나, 점차 두 왕국에서 슈라마나 종교들에 의해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던 힌두교가 다시 세를 확장하였고 판디아에서도 군주가 힌두교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약 6–7세기부터 타밀 지역에서 힌두교 부흥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7세기 후반에 한 번 절정을 맞았다. 이 시대 타밀 지역에서는 '나얀마르'(Nāyaṉmār, நாயன்மார்)로 불리는 시바파 타밀 시인-성자와 '알와르'(Āḻvār, ஆழ்வார்)라고 불리는 비슈누파 타밀 시인-성자들이 신의 위대함을 칭송하고 열렬한 신앙을 드러내는 시를 썼다. 약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타밀 문학에서는 이와 같은 힌두 종교 문학이 주류가 되었으며, 이 타밀 지역의 힌두교 부흥 운동은 점차 북인도와 동인도(인도 동부) 등지로도 퍼져나가며 천 년 이상 지속된 거대한 힌두교 개혁·부흥 운동인 [[박티 운동]]의 초기 형태가 되었다. 타밀 문학사에서 박티 문학은 엄청난 분량을 차지하고, 타밀 문학사를 매우 도식적으로 간략화할 경우 '상감 문학, 박티 문학, 근현대 문학'의 삼분법 분류를 사용하기도 한다. 《티루무라이》(Tirumuṟai, திருமுறை)는 시바파 타밀 박티 문학 작품집으로 총 12권이며, 7세기부터 12세기까지 27명의 시인이 쓴 시들이 [[촐라 제국]] 시대에 여러 차례 집대성된 것으로 권마다 상당한 분량이다. 《티루무라이》의 첫 일곱 권은 삼반다르(சம்பந்தர்), 티루나우카라수 나야나르(திருநாவுக்கரசு நாயனார்), 순다라르(சுந்தரர்) 세 명의 시인이 7–8세기에 쓴 것으로 《테와람》(Tēvāram, தேவாரம்)으로 통칭되며, 타밀 박티 문학을 대표하는 도합 8227수에 이르는 작품이다. 《티루무라이》에 속하는 서적 가운데 가장 나중에 쓰인 12세기의 《페리야푸라남》(Periya Purāṇam, பெரிய புராணம்)은 나얀마르 63명의 행적을 다루는 4272개 연으로 되어 있다. 《페리야푸라남》은 사료로서도 일정한 가치를 지닌다. 《날라이라 디브야 프라반담》(நாலாயிரத் திவ்வியப் பிரபந்தம்)은 시바파의 《테와람》 7권에 비견할 만한 비슈누파 타밀 박티 문학 작품집이며, 12명의 알와르가 쓴 시 4000수(어림이 아니라 일부러 수를 맞춘 것)로 구성되어 있다. 9–10세기에 집대성되었으며, 오늘날까지 타밀 지역의 비슈누파 힌두교도들은 《날라이라 디브야 프라반담》에 담긴 시를 읊으며 진행되는 종교 예술 아라이야르 세와이(அரையர் சேவை)를 향유하고 있다. 타밀 지역을 포함한 남인도에서는 박티 운동과 함께 다양한 지적 운동이 생겨났고 철학과 과학도 발달하였다. 특히 11–12세기에 [[베단타]] 학파의 3대 학설([[불이일원론]], [[한정불이론]], [[이원론]]) 가운데 한정불이론을 창시한 [[촐라 제국]] 시대의 타밀 철학자 [[라마누자]](Ramanuja, 타밀어로는 이라마누사르[இராமானுசர்])는 타밀 지역의 성숙기에 접어든 박티 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라마누자의 한정불이론 철학은 신자들의 종교적 열정을 무색케 하여 박티 운동과 양립하기 어려웠던 [[아디 샹카라]]의 엄격한 불이일원론에서 약간 일탈하고 [[상키야]] 학파의 이원론을 베단타 철학 체계로 일정 부분 도입한 것으로, 샹카라의 불이일원론과 달리 현상계는 [[브라흐만]]의 가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브라흐만이 전변된 양태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라마누자는 샹카라와 달리 영혼 그 자체가 순수 지식임을 깨달음으로써 [[해탈]]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은 [[카르마]](업)에 속박되어 한계를 띠며, 무지의 제거와 카르마의 정화를 위해서는 지식과 함께 능동적 행위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라마누자의 철학은 박티 운동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의 베단타 철학에서는 [[마드와]]의 이원론 등 더욱 행위를 강조하여 박티의 옹호로 기운 학설도 발달하지만, 라마누자의 학설을 이어받거나 수정한 학자들도 많았다.] 라마누자 본인은 산스크리트어로만 집필했지만, 라마누자의 저작에서는 타밀 알와르의 영향이 뚜렷하며, 타밀 지역에서 받아들여진 한정불이론 학파에서는 후대에 타밀어 저작도 작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